mano on the bridge!
[콧젤콧합작/글] 눈물 (by Fenny) 본문
눈물
by Fenny
스콧이 죽었다. 기관실장이 죽었다. 단명하기로 유명한 레드셔츠들 중 그는 꽤 오래, 늦게까지 살아남았은 축에 속했다. 캡틴이 눈물을 쏟고, 그 딱딱하던 벌칸 부함장의 눈꼬리가 축축해졌다. 온 크루들 가운데 그를 그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엔터프라이즈에는 커다란 흰 기가 내걸렸다.
그럼 나는? 멍하니 중얼였다. 당신이 없으면 난 뭘 해야 하지? 스타플릿 아카데미를 2년만에 졸업하고 난 후, 엔터프라이즈-A에 탑승했지만 스콧과 그녀가 함께한 시간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탑습 후, 상관에 대한 예의를 지킨답시고 존대를 하자 그 황망하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스콧은 이제 엔티의 조각 하나를 품은 채 우주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이제 저는 기술부 만장일치로 차기 기관실장 자리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스콧이 죽은 상황에서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득했다. 그와 함께 웃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이 밥을 먹던 그 시간들이 허상 같았다. 그는 제 세상의 형체를 유지하던 이였고,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이였다. 한시라도 그를 잃으리란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지라 스콧의 죽음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제 부모의 죽음보다도 더 크게 다가왔다.
-..이라, 제이라!
번뜩 정신이 들었다. 함장이다. 캡틴 커크가 다가와서는 뭔가를 묻는다. 아마 차기 기관실장으로서 자신이 임시로 수행하고 있는 직무들에 대한 내용과, 나를 향한 어색한 위로 몇 마디쯤이었던 것 같다. 네, 알겠습니다. 네, 잘 진행 중입니다. ..예, 괜찮습니다. 멍한 머릿속을 뒤로하고 간신히 대답한 뒤 다시 주저앉았다. 모두가 잊을 거다. 그가 얼마나 빛나는 이였는지, 얼마나 훌륭하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다들 잊을 거다. 조지 커크의 영예롭던 죽음이 그의 아들의 위업과 시간 탓에 묻혀져가고 지워져가듯, 모두가 그를 머릿속에서 지울 거다. 고작해야 생도들이 외워야 할 위인 목록 중 하나로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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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실장 직을 포기하기로 했다. 캡틴 커크와 모든 기술부 크루들이 반대하고 뜯어 말렸지만,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었다. 그를 이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혹여라도, 제가 그를 뛰어넘을까봐, 그의 빈자리를 완벽히 메꾸어버릴 것이 두려웠다. 스타플릿에서의 2년, 홀로 우주션을 고치며 보내던 알타미드에서의 세월은 그녀를 세기의 인재로 만들었다. 난공불락이던 몽고메리 스콧의 기술 관련 수상 기록을 깬 최초의 생도라 하였다. 물론 그는 예의 그 웃는 얼굴로 술잔을 기울이며 축하해주었지만, 뒤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천하의 몽고메리 스콧도 이제 한물 간 모양이지, 천재 외계인한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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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플릿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기관실장 직을 포기하자마자 들어온 수많은 채용이며 스카웃 제의 중 하나였던 스타플릿 교관이 되기로 했다. 그녀가 생도였던 시절의 그마냥 옷을 입고, 그가 쓰던 교재로 수업을 하는 것은 최소한 그의 명예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느즈막히 짐을 싸 임시로 정박한 지구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오랜만에 재회한 스타플릿 아카데미는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큼지막해진 숙소에 짐을 풀고, 새까만 교관복을 입고 강의실에 들어서 무미건조하게 수업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엔터프라이즈는 어린 항법사 꼬맹이를 기관실장이랍시고 세운 모양이었다. 그러면 스콧은 다시금 전설로 남겠지.
스타플릿을 조기졸업하던 날, 씩 웃으며 꽃다발을 건네던 그와 뚱한 표정으로 찍었던 사진은 액자에 담겨 책상 위에 가만히 놓아두었다. 그가 직접 달아준 최우등생 훈장, 승선 기념으로 받았던 최첨단 공구 세트도 함께였다. 그들을 알았던 이들은 그녀의 방을 방문할 때마다 말문이 막혀 스콧의 향수에 취해 가곤 했다. 그를 잊지 않는 것, 더불어 그가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사명이라 여긴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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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헤이, 제이라. 잘 지내고 있어?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이번에 지구에 두 달 정도 정박하거든. 만나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다음 금요일에 2200, 아카데미 앞에 있는 그 바로 나와. ㅡFROM KIRK.
캡틴 커크에게서 온 통신을 읽곤 곧바로 숙소를 나섰다. 커뮤니케이터를 며칠간 버려 두었다 집은 탓에, 이미 약속 시간에 육박해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바에서는 이미 커크가 술잔을 쥔 채 홀로 앉아 있었다.
-여어, 제이라. 어떻게 연락 한 번이 없어? 다들 너 보고 싶다고 난린데! 뭐, 그래봐야 다들 고향 가 버리긴 했지만..
-바빴다.
-오, 이제 그 말투로 복귀한 거야? 하선했다고? 나 여전히 네 상관이거든?
커크가 킥킥 웃으며 술잔을 채워 건넸다. 건네받은 술잔에 입을 대기가 무섭게 커크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대체 뭘 하고 살았어?
-…질문하는 의도를 모르겠군. 교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오, 방금 진짜 스팍 같았어!
커크가 낄낄댔다. 그런 거 말고, 제이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느냐, 이 말이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생각이라. 내 일상에서 스타플릿을 배제시키고 나면 남는 것은 단 하나였다. 스콧. 이미 저 하늘의 별이 되어 박혀버린 그.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커크에게 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에게 스콧은 그저 절친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므로.
-공동 연구 제의가 들어와서 검토 중이다.
-와우, 끝내주네. 너 천재인 거야 다들 알지.
그럴듯하게 말을 지어냈다. 아니, 반쯤은 사실이었다. 공동 연구 제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밀려들고 있었다. 그래봐야 검토는 커녕 체크해보지도 않고 거절했지만.
커크는 계속해서 실없는 말을 꺼냈다. 스팍과 우후라가 결혼 허락을 받으러 뉴벌칸에 갔다느니, 맥코이가 딸 만나러 저를 버리고 가 버렸다느니 하는 말을 건성건성 들으며 술을 홀짝이던 차에 그가 돌연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스러움에 굳어 있자, 그가 훌쩍이며 스콧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안해, 제이라. 그냥, 이러고 있으니까, 이거, 스콧이 좋아하던 술인데.. 좋아했을 텐데.
아, 그거였나. 이 남자는 스콧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할 수 있구나. 한바탕 눈물을 쏟을 수도 있구나. 스콧이 죽었을 직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그에게 울어주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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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의 장례식 날은 벌써 까마득히 오래전이다. 고위 장교의 죽음으로 급히 지구로 귀환한 엔터프라이즈는 스타플릿에서 스콧의 장례식을 치렀다. 커크의 추모사를 듣고, 그의 업적을 짤막히 정리한 영상을 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울지 않은 자는 없었다. 모두가 얼굴 마를 새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안에서 멀뚱히, 창백하고 메마른 얼굴로 앉아 있던 것은 오직 나 하나였다.
-쟤가 걔 아니야? 스콧 대위님이 죽어라고 챙기던 애. 졸업하자마자 함선 타게 한다고 캡틴까지 대동해선 고위 간부들 찾아가셨었잖아.
-그러게. 근데 어쩜 쟨 울지도 않네.. 독하다.
-인정머리가 없는 거지. 대위님만 불쌍하게 됐지 뭐.
뒤쪽에 앉아 있던 생도들 무리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커크와 스팍이 분개해선 당사자를 잡아내 재판에 회부하려고까지 했지만 내가 뜯어말렸다. 그냥 둬, 제발. 정말 날 위한다면.
스콧이 죽은 뒤, 비난과 욕설은 당연히 내가 견뎌내야 할 것들 중 하나였다. 스타플릿 교관이 된 이후, 생도들이 짖궃게 물어오는 스콧에 대한 질문에 담담히 답하던 것들마저 그들에게는 나를 욕해댈 이유로 충분했으리라. 더군다나 나는 아직도 그에게 눈물 한 방울 흘려주지 못했으므로, 내게 쏟아지는 온갖 모욕과 비난을 받아내는 것으로라도 그에게 속죄해야 한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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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콧이 그립다. 여전히 눈을 뜨면 그가 곁에서 시원히 웃고 있을 것만 같다. 사정해서 얻어온, 그의 유품 중 하나였던 그의 레드셔츠는 곱게 개켜져 옷장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의 사진을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괜히 슬프지도 않으면서 동정 사려 하는 거라던 이야기가 수도 없이 들려왔지만, 나는 꿋꿋이 그의 사진을 방에 가득 채워갔다. 행여나 내가 그를 잊을 것이 두려웠다. 그 없는 삶에 적응해버릴까 봐 두려웠다. 흔히들, 가까운 이의 죽음 이후에는 그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적응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다 틀렸다. 그는 내 세상이었고, 내 세상이다. 내 세상이며 삶에서 그를 빼버리기란 불가능했다. 그를 잊거나 그 없는 세상을 구축하는 일 또한 죄악이리라. 이미 눈물이 말라버려 더 울 수 없다던 흔한 비극 서사의 주인공도 아닐 뿐더러, 내게는 그럴 자격조차 없다.
많은 이들이, 특히 커크가, 우리를 보며 사실 사귀는 사이 아니냐며 놀려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스콧은 그저 머쓱히 웃거나,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달아나기도 했지만 단 한번도 내게 이성 간의 애정이 어린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나 또한 그를 향한 경애심이 지구인들 간의 연애감정과 같다고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그것이 불만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무던한 관계에 만족해했었다. 우리는 온전히 플라토닉한 관계로 지내면서도 그 외에 타인과의 로맨틱한 관계는 전혀 만들지 않고 지냈다. 나야 그렇다 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야살스런 눈웃음을 받던 그에게 있어서는 꽤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당신은, 만약 그랬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헛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간다. 머리를 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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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라 교관님, 질문이 있는데요.
수업이 끝난 뒤, 생도 하나가 말을 걸어 왔다. 수락의 의미로 고개를 까딱이자, 생도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입을 열었다.
-스콧 대위님 말이에요.
아, 또 그건가. 지겹게 들어온 말을 또 들어야겠구나.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그 생도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가소롭다는 듯 킬킬대는 비웃음이 돌아왔다.
-사실은 딱히 한 것도 없잖아요. 근데 수업하실 때마다 너무 찬양하시는 것 같아요. 까놓고 워프 공식을 그 분 혼자 만드신 것도 아닌..
..거의 모든 지구인들은 나보다 약하다. 때문에 커다란 체구에 험상궂은 인상을 가진 이 생도 역시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온 힘을 다해 날린 주먹 한 방에 바닥에 나동그라져 코피를 쏟는 생도를 발로 차 주고 나서도 성이 풀리지 않았다.
소란소리를 듣고 달려온 다른 교관들에게 이끌려 스타플릿 인사고과 책임자라는 자에게 끌려갔다. 그 개같은 새끼는 그대로 메디베이로 실려갔고, 인사고과 책임자는 불퉁한 표정을 짓곤 내게 화를 냈다. 교관이 생도를 폭행하는 것은 엄격히 금기시되어 있으며, 이 경우 교관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나 내 능력을 높이 사 이번만큼은 눈감아 주겠다 하였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 그대로 숙소를 지나쳐 밤거리를 서성였다. 찬 공기가 살을 에여왔다. 길거리에 놓인 벤치에 주저앉아 맥주 한 캔을 깠다. 캔을 따다가 그만 손이 베이고 말았는데, 답지않게 피가 철철 흘렀다. 급한대로 옷에 슥슥 피를 닦아내다 한맺힌 울음이 터져나왔다. 스콧은 언제고 내가 상처를 홀대할 때면 얼굴을 찡그리고 손을 잡아끌고 메디베이로 향하곤 했다.
당신은, 정말 갔구나. 정말 내게서 영영 멀어지고 말았구나.
곪은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가 봤다면 필시 청승맞게 뭐 하는 짓이냐며 핀잔을 걸어왔으리라. 하지만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내게 제약을 걸지 않았다. 조금씩 흘끗거리긴 해도 말을 걸어오는 이는 없다.
당신은 죽었구나.
뼈저리게 박혀오는 사실이 아팠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를 한구석에 덮으려 용을 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을 정말 보내게 되겠지.
물기 어린 긴 밤이 깊어갔다. 하늘에서는 문득 비가 내렸다.
-END